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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회 글사랑 낭송회, 엔솔로지 16호
시인은 도시 속에 심어지는 한 그루의 나무다. 한 포기의 풀이다. 한 송이의 꽃이다. 도시 안에 나무가 많아야 하듯이 이 시대엔 시인이 많아야 한다.
이 지구촌의 시민들이 기다리는 것은 시인이며, 음악가이며, 다시 화가이다. 그들은 인류의 봄이다. 그들이 없으면 이 지상엔 봄이 오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모든 것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다. 그리하여 사랑의 봄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시의 본질은 사랑이다. 장미는 피지 않고 가시만 칼날처럼 살아 있다.
우리는 죽어가는 시혼을 다시 불러야 한다. 아주 눈을 감기 전에 시혼을 불러야 한다. 시혼은 나의 영혼이요 우주의 혼이다. 그래 시와 혼이 눈을 감으면 나도 우주도 눈을 감는다.
우리들이 지금 요만큼이라도 사랑의 보금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전 세대의 시인들이 마련해둔 사랑의 땀 때문이다. 오늘의 시인들은 내일의 자리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가. 도시에 나무가 없으면, 풀이 없으면, 꽃이 없으면 구름이 오지 않고 그리하여 병들게 된다.
시는 삭막한 마음밭에 심어지는 나무다. 사람의 마음밭에 시가 없으면 마음이 삭막해진다.
시인은 시대의 나무요, 역사에는 예언자다. 시인이 예언자적 위치에 설 수 없다면 3욕의 눈이 먼 속인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한 도시가 멸망을 당하지 않으려면 의인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의인이 어떤 사람인가, 곧 시인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의 말을 하면 천사가 되고 악한 말을 하면 악마가 되는 것이다.
― 황금찬, 월간 《글사랑》 창간 준비호 권두칼럼(1998. 9)